대흥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2025.01.12-주일축제예배]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마가복음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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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흥교회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5-01-26 20:52

본문

주요 주제
- 예수님의 사역과 그 목적
- 예수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
- 본질적인 변화와 그 필요성


다음 할 일
-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동참
-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전진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한 후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 올해 1년 동안 영원한 천국, 영원한 소망 바라보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


요약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 사람들은 어두움을 두려워함
-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임
-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모르기 때문임

예수님의 대언
- 죽음은 당연한 것임
- 죽음이 끝이 나면 심판이 있음
-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 무서움
- 예수님께서 하나님 곁에 서 계시는 이유는 우리를 대언하기 위해서임

예수님의 변호
- 예수님이 우리의 변호사라면 최고임
-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변호해 주심
-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함
- 예수님을 잘 믿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음
- 성경이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음
- 성경은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함
- 수고와 고난과 슬픔이라고 말씀하고 있음

예수님의 성육신
- 인류의 긴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려고 애를 쓰지만 그 일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임
-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이 있었음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고난과 수고와 슬픔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는 것임

예수님의 사역
-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은 바로 주님이 말씀하셨던 이 일 그대로 걸어가셨음
- 소망 없던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소망의 길이 열림
- 예수님께서 베세다라고 하는 동네에 찾아오심
-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심
-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고 질문함
-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안수하고 나니 완전히 나아지고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하심

사울의 회개
-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함
- 예수님께서 사울의 길을 막고 사울을 만나줌
- 사울이 자신의 돌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새롭게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그에게 보내어서 그의 눈을 열어줌

사울의 바울 된 과정
- 사울이 바울 된 다음 눈에 보이는 것 위에 살았던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말함
-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두 번씩이나 안수하신 것은 제대로 된 것, 영원한 것,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었음
-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기도 함
- 우리의 신앙의 성장도 이런 과정을 필요해서 됨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
-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여러분의 세상의 방황이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음
- 내 신앙이 자라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함
-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다음 집으로 가면서 부탁하신 말씀이 있음
- 마가복음 8장 26절 말씀 같이 읽어보자고 함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심으로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세상의 것만 보며 살아야 할 우리에게 영의 눈을 열어 저 하늘,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천국의 시민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본질적인 변화를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음
- 예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면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함
-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우리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실 그 하나님과 함께 오직 앞으로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대형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함

영적 맹인의 삶
- 영적인 맹인으로 태어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생을 주님이 찾아오셔서 만져주시고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오늘도 믿음의 자리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음
- 안타깝게도 본질적으로 변화된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과 짝하며 남을 흉보며 욕하며 끌어내리는 전혀 받은 은혜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함
-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눈을 땅에서 하늘을 향해 돌리게 하시고 올해 1년 동안 영원한 천국, 영원한 소망 바라보며 싸우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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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예외 없이 어두움을 두려워합니다. 어두움이 두려운 이유는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또 누가 나를 공격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눈에 보이고 그리고 내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두려울 이유가 없겠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죠.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고난이 어떤 문제가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5년 후, 10년 후 뿐만 아니라 1분 후에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람들이죠.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 사람의 본질적인 불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비슷하죠.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고 난 다음 그다음에 내게 어떤 길이 죽음 이후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겁니다.

죽고 난 다음에 또 좋은 세상이 있다면 두려울 것 없겠죠.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어떤 길을 내가 걸어가게 되느냐를 안다면 여러분 그건 그렇게 두려움이 아닐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죽고 난 다음 세계는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거죠.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 아니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야 할 일, 죽음 이후에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을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여러분 같이 한번 고백할까요?
시작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중요한 말씀이에요.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의 죽음을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누구도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의 길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저도 죽음의 길을 피해갈 수 없고, 여기 계신 여러분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은요. 우리에게 있을 죽음을 향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더 가는 거예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언제 죽느냐 그건 몰라요. 그러나 죽음은 당연한 거예요.
죽음이 끝이 나느냐 그다음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심판이 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거예요.
죽고 나면 가장 먼저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심판대입니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심판대가 무서운 거예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거기서 다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심판대가 무섭지 않아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곳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2장 1절 말씀 같이 읽을까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면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은 죄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가 없잖아요.
회개하지만 또 여전히 연약한 우리는 또 다른 죄를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심판대 앞에 제일 두려운 건 죄죠. 우리도 심판대가 무서운 거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내가 완벽하게 해결받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심판대 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곁에 누가 있다고 그랬어요?
예수님께서 서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좋아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곁에 서 계시는 거예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곁에 서 계실까요?
우리를 대언하기 위하여 여기서 대은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 식으로 하면 변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변호사라면 최고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변호해 주는 거예요. 이 땅에서 우리가 부족해도 실수했어도 완벽하게 회개하지 못해도 두려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할지라도 그 곁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변호해 주겠죠.
아버지 저 사람 대흥교회 교인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 대흥교회 집사였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주는 거예요. 나는 두려워 떨지 몰라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변호해 주시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변호 때문에 우리는 그 심판들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 무엇이 기다릴까요?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5장 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땅에 있는 장막집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체가 장막 집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이 장막 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 헬스를 하고 운동을 해도 때가 되면 이 장막 집은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그때 내 영이 어디로 가냐 하늘로 가는 거죠. 심판대를 통과하여 하늘에 있는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영원한 집에 입주하여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죽음 이후의 모습인 거예요.
예수 믿는 자에게 오늘 우리가 암송했던 것처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다.
그 말은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아버지의 집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잘 믿어야 돼요. 이 세상에서 예수가 필요한 거예요.
오직 예수뿐이네. 예수 예수 예수가 필요한 것은 이 땅에 살 때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설 때 그 예수님이 필요한 거죠.

여러분 예수 잘 믿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앞에 여러분 눈도장 확실하게 찍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물어볼까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 나는 적어도 예수님 앞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확실하게 눈도장 찍었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큰일 났네. 어떡하시려고 예수 잘 믿어야 돼요. 올해 1년 동안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만내 확실하게 믿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아요.
그렇다고 너무 빨리 가려고 그러지 마시고 주어진 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보면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그의 삶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죠.

이 맹인의 인생은 불안과 그리고 그의 인생에 아무런 기쁨도 소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자존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사람들은 맹인은 죄의 결과라고 눈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도 못합니다.
요한복음 9장 2절에 보면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제자들이 한 맹인을 보면서 예수님께 물었던 질문이죠.
주님 이 사람이 이렇게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그 말은 맹인은 죄인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 이 예수님 앞에 찾아왔던 이 맹인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눈부신 태양도, 들에 핀 아름다운 꽃들도, 그리고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의 그 따뜻한 눈빛도 바라볼 수 없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어둠, 절망,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단나도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면 우리 과거의 모습이 바로 이 맹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아직도 예수 만나지 못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는 큰소리 치고 살아가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맹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죠.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요.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수고와 고난과 슬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2장 22절과 23절 말씀 같이 고백합니다.

시작 사람이 해아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여기 계시는 여러분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해결하지 못하는 내가 살면서 깨닫게 된 것 평생 수고하는 거죠.
끝없는 끝없는 고난 이 문제 해결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문제가 내 앞에 있는 고난의 연속인 거죠.
밤에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는 모습, 여러분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겁니다.
시편 90편 9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70년을 살든, 80년을 살든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의 결과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 고난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겁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였던 아담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이후에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죄가 있는 거예요.
그 원죄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죄의 지배를 받습니다.
악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 땅의 것만 가지려고 하는 그런 악한 생각 속에 살아가는 거죠.
길을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다고 그들에게 있는 불안과 그리고 고난, 슬픔과 수고가 끝나지 않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가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그리고 새롭게 만들려고 애를 쓰지만 그 일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 안에 있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문제가 끝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거죠.
수고와 고난과 슬픔이 끝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이 있었던 거죠.
이 세상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살아가는 인생 여정 동안 수고, 슬픔, 고난을 반복하고 있는 이 세상의 인류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의 짐을 대신 져주겠다. 내가 너희가 해결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그 모든 문제로부터 내가 해결하고 내가 너희를 쉬게 해 주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첫 번째 하셨던 설교의 내용이 이것 아닙니까?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놀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이 오신 이유,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가 앞으로 이 일을 하겠다 말씀하셨던 것.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그 고난과 수고와 슬픔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은 바로 주님이 말씀하셨던 이 일 그대로 걸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소망 없던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소망의 길이 열렸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어 소망 없던 이 맹인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그 과정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변화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옴으로 시작되었죠.
예수님께서 베세다라고 하는 동네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랬더니 몇 사람이 앞을 보지 못했던 한 맹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 친구들의 모습, 그리고 자신 앞에 서 있는 맹인의 모습 속에 치료받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고 그 베세다 그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침을 뱉고 난 다음 안수하시고 질문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랬더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이 맹인이 사람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깜깜한 어둠에 살았던 이 사람에게 사람이 보이고 사물이 보인다는 것 굉장한 변화 아닙니까?
놀라운 일이죠. 감사할 일이죠. 그에게 새로운 인생, 새로운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한 번 안수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25절에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심에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그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님께서 첫 번째가 아니라 다시 한 번 그에게 안수하고 나니 이제 완전히 나아지고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안수했을 때 눈이 뜨여졌습니다. 그가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았습니다.
이건 뭘 의미합니까? 육신의 눈만 떠진 거예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그에게 육신의 눈만 뜨여줘도 놀라운 일이죠.

가고 싶은 곳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볼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싶은 거 가질 수 있겠죠.
그런데 예수님이 기대했던 바는 그것이 아닌 겁니다.
이 세상의 것 가진 듯하지만 잡은 것 같지만 언젠가 내 손에서 떠나버리는 가치 없는 그것만 보고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거죠.
예수님은 그 맹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하늘의 것을 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씩이나 안수하며 그의 눈을 열어주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사물만 보았던 그가 이제는 모든 것을 밝혀 보는 육신의 눈만 아니라 영의 눈까지 열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 거죠.
여러분 사도바울의 변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사울로 살았을 때 그는 땅의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성공하는 길, 출세하는 방법, 사람들에게 높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방법, 기가 막히게 알았습니다.
사울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유대교에 맹종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다미에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그들을 잡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의 길을 막고 사울을 만나 주었습니다.
나는 너가 박해하는 바로 그 예수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만났을 때 사울에게 나타난 특징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8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느니라 분명히 눈을 뜨고 다녔던 사울.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시력을 빼앗아 갔습니다.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만약 사울을 그대로 둔다면 그는 눈 때문에 가치 없는 것, 이 세상의 것, 그것만을 위해 살다가 그의 인생 마지막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한 인생으로 끝날 것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사울의 눈을 보지 못하도록 하신 겁니다.

그 사울이 자신의 돌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새롭게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그에게 보내어서 그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7절과 18절 말씀 시작,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내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오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예요.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 나서 비로소 보게 된 겁니다.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씀이 중요한 겁니다. 변화 받아 다시 보았을 때 그동안 눈에 보였던 땅의 것, 욕심, 권력, 명예, 출세 그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하늘의 것, 영원한 것들을 바울은 비로소 보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바울이 되어 땅의 것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명 전체를 걸었던 거죠.

사울이 바울 된 다음 그가 한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 위에 살았던 그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을 바울이 된 다음 그너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진 다음 배설물처럼 여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너무 소중하게 보였는데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게 되고 영의 눈이 띄어진 다음에는 그건 배설물이었습니다.
냄새나는 것이고 썩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거죠.
다시 보게 된 축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두 번씩이나 안수하신 것은 제대로 된 것, 영원한 것,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었던 거죠.
여러분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우린 다 십자가 보혈로 거듭난 사람들 아닙니까? 새롭게 변화된 사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 만나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살아가십니까?

새롭게 변화되기 전 여전히 과거에 매여서 여전히 땅의 것 얻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거 붙잡기 위해서 내 자존심 그거 하나 붙잡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신 것,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신 것은 땅의 것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땅의 것이 아니라 이젠 정말 눈을 들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가치를 두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결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맹인에게 두 번씩이나 안수했다는 것 묵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맹인의 눈이 열려서 근본적인 변화 신앙 믿음의 사람이 되었잖아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성장도 이런 과정을 필요해서 된다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새 가족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그분들이 교회에 와서 이름을 적어낼 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세상의 끝없는 방황을 이제는 끝내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여러분 교회로 오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오신 우리 새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여러분의 세상의 방황이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분명 일어납니다. 그런데요 여러분이 기대하는 여러분의 생각처럼 빨리 일어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 자라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름을 적고 교회 다니는 순간부터 내 삶에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막 해결되고 경제적으로 회복되고 속썩이던 자식들이 어느 날부터 어머니 아버지 그러고 여러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일어나겠지만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기도의 자리에 예배의 자리에 꾸준하게 나올 때 어느 날 순간부터 도대체 목사님 무슨 소리하는지 왜 저렇게 소리 지르는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귀가 열려서 아 저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기다리셔야 되는 거죠. 그때까지는 인내하셔야 되는 거죠.
분명 본질적인 변화가 여러분에게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다음 집으로 가면서 부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26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이제는 집으로 가야 되는데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
여러분 그 마을이 어디일까요? 처음 예수님께서 이 사람과 만났던 곳 베세다였죠.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끌어서 다른 곳으로 그 마을에서 벗어난 다음에 안수하여 눈을 뜨게 했습니다.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께서 고침 받은 이제 눈을 뜬 이 사람에게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
이 말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해 보면 마을로는 돌아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향 마을인 베세다로 돌아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베세다는 예수님의 기억 속에 불신앙의 사람들, 완악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베세다에서 엄청난 기적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지역보다는 훨씬 더 많이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도 베세다 아니었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고 끝없이 의심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베세다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에서 22절 말씀 같이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거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시나 화 있을진저 베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배 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대세다는 예수님께는 조금도 변화되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바로 베세다였던 거죠.

예수님께서 고침 받은 이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은혜 받은 이 맹인에게 베세다에 돌아가지 말라고 한 이유를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지금은 내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 입은 사람, 믿음 좋은 사람들끼리 몰려 있어야만 내 믿음이 더 성장하고 자라게 되죠.
지금 내가 은혜 받았다고 믿음이 있다고 해서 믿음 없는 사람들, 의심하는 사람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베세다에 만약에 들어가게 되면 그의 믿음도, 받은 은혜도 다 쏟아붓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믿음 없는 사처럼 땅의 것 욕심 누리면서 살아갈 것이 선명하게 보였기에 예수님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말라고 명령했던 거죠.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너는 변화받았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것이 바로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이제 너희는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하니 또 다른 곳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예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거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예수 만나기 전 맹인으로 살아야 할 불쌍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수고와 고난과 슬픔을 반복하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심으로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세상의 것만 보며 살아야 할 육의 눈만 가지고 살아야 할 우리에게 영의 눈을 열어 저 하늘,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천국의 시민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본질적인 변화를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합니까?

여러분, 지난 1년 여러분이 살았던 삶을 돌아보면 여러분은 과연 은혜 받은 자답게 은혜의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까?
하늘의 것 바라보며 저 영원한 세상 위에 살으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은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가운데서 믿음 없는 사람들과 짝하며 깨끗한 우리의 믿음, 오염되고 변질되고 냄새나는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고침받은 맹인에게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 하신 이 명령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새해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우리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실 그 하나님과 함께 오직 앞으로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대형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적인 맹인으로 태어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했던 우리 인생, 주님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시고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오늘도 이렇게 믿음의 자리에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본질적으로 변화된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세상의 것을 탐하며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과 짝하며 남을 흉보며 욕하며 끌어내리는 전혀 받은 은혜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새 해를 주신 하나님, 또 새해를 향하여 우리에게 거룩한 도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을로 들어가지 마라. 과거로 믿음 없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말라.

명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우리가 받아들이며 이제 우리의 눈을 땅에서 하늘을 향해 돌리게 하시고 올해 1년 동안 저 영원한 천국, 영원한 소망 바라보며 싸우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대형 교회 안에 이런 영적인 눈이 열린 본질적인 변화를 받은 성도들로 가득 채우셔서, 이 한 해 동안 대흥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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