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2025.03.23-주일축제예배] 안전거리를 유지합시다(누가복음 22-5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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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흥교회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25-03-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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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3-주일축제예배] 안전거리를 유지합시다(누가복음 22-54-62)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하다(마 26:57-58; 막 14:53-54, 66-72; 요 18:12-18, 25-27)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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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베드로의 신앙과 용기

- 베드로의 실패와 그 원인

- 신앙생활에서의 안전 거리와 그 중요성



다음 할 일

- 베드로의 실패 원인 분석

- 베드로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모색

- 베드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

- 베드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 필요



요약

예수님의 12 제자

- 예수님의 12 제자 중 베드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제자이기 때문임

- 베드로는 예수님께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임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면서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함

- 베드로는 모든 것을 두고 예수님을 쫓았음


베드로의 사랑의 결단

-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기의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임

-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뽑아서 말고의 귀를 내리친 것은 예수님을 자기가 막기 위해서 주님을 보호하기 위한 베드로의 사랑의 결단이었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음

-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음


베드로의 영적 교만

- 베드로가 교회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건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들을 우리의 형제로 받아줘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를 가지고 베드로의 제안 때문에 회의가 열린 것임

- 베드로의 발언 때문에 회의가 끝이 났고 이방인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말함

-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는 영적인 교만 때문임


예수님의 기도

- 예수님은 베드로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심

- 베드로가 시험에 든 이유는 자기 생각만 믿고 자기 마음만 믿고 함부로 나섰기 때문임


하나님의 사랑

-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는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기 생각,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때문임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함

- 하나님은 우리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몇 군데서나 말씀해 주고 있음


하나님의 인정

- 하나님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심

- 신앙의 출발은 내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됨

- 내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신앙은 출발되는 것임


베드로의 실패

-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며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비하, 자기를 비움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누리는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람

- 베드로가 영적으로 교만하여 예수님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은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임

- 베드로의 실패는 사탄이 한 일임


사탄의 베드로를 통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방해

- 사탄이 베드로를 움직여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방해한 것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음

- 첫 번째는 예수님을 설득하게 함

- 두 번째는 예수님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함

- 세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심하게 만듦

- 베드로가 실패한 결정적인 증거를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9절에 있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음


하나님이 주신 안전거리

-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안전 거리가 있음

- 하나님의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안전거리는 언약교회와의 이천 거리 2천 규빗임

-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임

- 말씀으로 돌아가고 십자가 가까이 더 나아감으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건강한 신앙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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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예수님의 12 제자를 생각한다면 여러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자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당연 1부도 2부도 역시 3부도 베드로라고 그러네요.

역시 베드로일 겁니다. 그렇죠.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예수님을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제자 베드로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 베드로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요.

여러분 베드로는 예수님께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천국 열쇠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에 베드로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말을 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셨던지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땅에서 너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거죠.


또 우리가 베드로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면서 열두 제자를 부를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나를 따르라 사람을 취하게 할 것이다.

그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합니다.

그 모든 것 속에는 뭐가 포함될까요? 배와 그물과 가족과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즉 자리에서 순종했다는 겁니다.

그 말은요. 베드로는 세상의 것과 예수를 따르는 걸 비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게 더 좋아서 다른 것이 아니라 그는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그 자리에서 순종했던 거죠.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게바라고 하는 또 별명을 얻었습니다.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한테 오는 걸 보고 예수님은 그 이름이 시몬이잖아요.

그 시몬에게 너는 게바라 하라. 게바는 번역한 즉 베드로라 베드로라는 말은 단석이라는 뜻이거든요.

예수님은 그 시몬이라고 하는 한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은 반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대와 함께 그런 가능성을 보고 게바라 별명을 지어준 겁니다.

또 다른 이름을 가졌던 거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시원시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한 다음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떠날 것이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을 떠나가도 나만은 나는 절대로 떠나가지 않겠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나는 주님을 떠나가지 않겠다고 충성을 맹세했던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기의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게스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이제 내려오는데 예수님을 팔려고 작정했던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또 바리새인들, 서기관들로부터 허락받은 군인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엄청난 위기의 자리잖아요.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의 귀를 내리쳤습니다.

무모한 짓인지는 몰라도 여러분 이것은 왜 했습니까?

예수님을 자기가 막기 위해서 주님을 보호하기 위한 베드로의 사랑의 결단이었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그런 믿음과 그런 성품과 그런 열정 때문에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이 그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 대표였던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헤롯은 그다음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이 베드로였던가 봐요.

그래서 베드로를 체포해서 죽이려고 했는데 그날은 죽일 수가 없어서 감옥에 가두었잖아요.

그런데 그 밤에 성령께서 베드로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영향력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면서 아 신앙은 저런 거구나 믿음은 저렇게 살아야 되구나 따르고 존경했던 거죠.


베드로가 가장 교회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예루살렘에 교회 회의가 소집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의 장로들과 또 대제사장,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 회의에서 의논하는 주제는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방인 중에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과연 우리 교회가 그들을 우리의 형제로 받을까 우리의 신앙 공동체 안에 그들 이방인들을 우리가 받아줘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를 가지고 베드로의 제안 때문에 이 회의가 열린 겁니다.

성경에 보면 오랫동안 변론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격론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상상처럼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양쪽이 열심히 나누어서 지금 싸우고 있는 것처럼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런데요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가 회의가 끝이 나지 않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그들도 구원받습니다. 베드로가 용감하게 말을 한 거예요.

여러분 이거는 그 당시에 거기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돌에 맞을 일이죠.

그런데 베드로는 그 속에 있는 구원의 경험을 가지고 과감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이 과감한 베드로의 발언 때문에 드디어 회의가 끝이 났습니다.

이방인들도 형제로 받아들이고 주 예수의 은혜가 그들에게도 임하고 성령이 우리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예루살렘 회의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사도행전 15장 22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신라더라 회의에서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첫 번째로 안디옥이라고 하는 이방 지역에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한 거죠.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을 수 있도록 공식적인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그때 이방인을 향해서 선교의 문이 열림으로 각 제자들이 이방의 땅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 복음이 조선 땅으로 대한민국으로 왔고 우리의 귀에 들렸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되어 오늘도 이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우리가 서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게 베드로가 한 엄청난 일입니다. 교회 역사에 세계 기독교 역사에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열정이었고, 베드로의 신앙이었고 베드로의 영향력이었던 거죠.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대단한 믿음의 거장이었던 베드로도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죠.

자신을 신뢰하며 그렇게 믿어줬던 주님을 베드로는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여러분 성경에 3이라는 숫자는 완전 수잖아요.

베드로가 실수로 부인한 것이 아니라 그가 완전히 예수를 부인했다.

그렇게 해석해도 가능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던 베드로가 이럴 수 있을까 정말로 베드로였을까 의심할 만큼 이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매년 사순전 절기가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묵상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뛰어넘을 수 없는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의 이 부끄러운 모습.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 대단했던 베드로의 실패의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여정 속에 우리도 실패하지 않고 더 끝까지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결단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그 엄청났던 베드로가 무너진 것은 영적인 교만 때문인 거죠.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너무 믿었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귀에만 있으면 혹은 장담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죽으면 죽었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

그는 베드로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저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후에 그는 통곡했습니다.

베드로가 통곡한 이유는요. 자기의 입으로 나는 예수를 모른다.

세 번 얘기했을 때 닭이 울고 그 순간 베드로의 머릿속에는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던 거죠.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주님도 그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오늘 닭 울기 전에 또는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 말씀했는 그 말씀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어 그런 예수님을 두고 바깥으로 가서 통곡했던 거죠.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미 고난을 당하고 그렇게 시련 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경고한 적이 있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해라.

마음은 원이지만 너 육신은 약하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제가 묵상하면서 이렇게 한번 해석해 보았습니다.

베드로야 너희에게 닥칠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기도해야 한다.

나는 나를 향한 너의 열심과 너의 열정과 용기를 너무 잘 안다.

그러나 너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너의 열정, 너의 의지만으로는 나를 향한 지금의 사랑을 지켜낼 수 없단다.


너의 힘으로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깨어서 기도해라.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홀로 가서 기도하시다가 하나님 할 수만 있다면 이 산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도였습니까?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왔는데 제자들은 거기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 속에서 3명 중에 베드로에게 말했을까요?

주님은 베드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고 계셨던 거죠.

늘 앞서가는 말은 열정은 대단한 것 알지만 그 열정 가지고는 사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겁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나약함 그리고 불완전을 알고 계셨죠?

여러분 그 증거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찾아가셨잖아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할 일 없이 고기나 잡고 있던 그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많은 제자들 중에 누구를 부르셨어요?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그 사건. 예수님께서 거기에 있던 그 많은 제자들 중에 누구를 불렀어요.

근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를 불렀습니까? 베드로야 예수님께서 주신 별명 평상시에 불렀을 것 같으면 베드로야 할 터인데, 너는 반석이라 이렇게 말할 터인데, 그날따라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베드로라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모나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 베드로는 자기가 했던 부끄러운 일 때문에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괜찮다.

너는 너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너가 인간인 걸 알았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부탁하지 않았니 너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가 경고하지 않았니.

너는 인간이야. 그럴 수 있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베드로는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차라리 주님과 죽을지언정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은 아셨던 거죠. 베드로가 다기 세 번 울 때 그가 통곡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속을 꿰뚫어보고 자기의 연약함을 아시고 조심하라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깨어 있어라 기도하라고 그렇게 말씀했는데 베드로는 그 주님의 말씀을 그냥 흘려버렸던 거예요.

귀담아듣지 않았던 거예요. 자기 생각만 믿고 자기 마음만 믿고 함부로 나섰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주님 앞에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왜 시험에 듭니까?

왜 넘어집니까? 이유는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겸손히 여기고 나를 신뢰하기 때문이에요.


내 스스로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자꾸만 포장을 하는 거죠.

그러다가 사탄이 한 방 치면 날아가는 거잖아요.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는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기 생각,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때문인 거죠.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래요.

내 속에는 끔찍한 죄가 있고 나는 부족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는 인간에 불과한데, 우리 자신은 내가 인간이라고 하는 건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몇 군데서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잖아요.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너희 마음대로 하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부끄럽고 두려워서 숲속에 숨었습니다.

여러분 에덴 동산이 얼마나 넓을까요?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눈에 그들이 어디에 간들 못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숨어 있는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너가 어디 있느냐? 너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몰라서 너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까요?

절대 그런 거 아니어요 달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찾아온 것은 기회를 주기 위한 거예요.

아마 하나님은 그 아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거예요.

아담아 이제 알았니 너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 것을 너 깨달았니?

그러면 됐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나를 신뢰해라.

나를 의지해라 그 말을 하시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여러분 아담은 자신에게 찾아왔던 하나님 앞에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 당신이 지어서 내게 붙여준 그 여자가 주어서 나도 먹었습니다.

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사람은 실수할 수 있잖아요. 죄를 지을 수 있잖아요.


여러분 자신의 작은 실수와 죄를 포장하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솔직하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그 아담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변명하고 포장하려고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이제야 내가 이렇게 하찮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턴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은 그 아담이 아담 잡으면 그냥 주르르르 형체 없이 사라지는 흙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근데 아담은 아닌 거예요. 뭔가 괜찮아 보였던 거죠.

그다음에 사람들이 죄를 범하잖아요. 하나님께서 홍수로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 방주에 탔던 짐승들만 새로운 땅에 이제는 내렸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노아와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립니다.

여러분 그 제사가 어떤 제사겠습니까? 아마 인류의 역사에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제사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고 자신들만 살아남았는데 그들이 형식으로 아까운 마음으로 제사할 수 있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며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을 거예요.

하나님도 알아요. 그 번제의 향기를 맡으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것. 그 속에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인정하신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내가 사람 때문에 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이 별 볼 일 없는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건만, 안타깝게도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위로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출발은요. 내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것, 내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신앙은 출발되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깨어질 존재고 내가 무익한 존재고 내게는 단 1%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인생을 포기할 것 같습니까? 나를 붙잡아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진 거예요.

내가 무익하고 내가 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누구를 찾을까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거죠. 칼빈이 우리에게 했던 중요한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 앞에 나가간다는 겁니다.

다윗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다윗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거예요.

괜찮았죠? 그런데 다윗도 넘어졌습니다. 어디에서요?

어느 날 한가하게 옥상에서 거늘고 있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며 무너졌잖아요.


물어보니까 이 여인은 우리아라고 하는 군인의 아내요.

이미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접어야죠. 그런데 다윗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가지고 그를 데리고 와서 빼앗아 온 거죠.

그리고 그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이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당신이 한 일이 뭐냐고 말했을 때 아시죠?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부터 회개하는 거예요. 밤을 새우며 회개했습니다.

침상에서 썩어서 냄새가 날 정도로 회개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죠. 자기를 믿고 살았던 자기 자신에게 속았던 못난 자아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통해 자복하며 기도했죠.

그때 비로소 다윗은 하나님으로 시선을 돌리어 다윗이 이때 바세바의 일을 경험으로 쓴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그 시편 51편 1절에서 3절까지 말씀 같이 한번 고백할까요?


시작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10 물은 나는 내 죗가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10절 말씀은요 없나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철저하게 자기를 깨닫고 나서 두렵죠.

자기의 마음속에 이 무서운 죄가 있다는 걸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숨조차 쉴 수가 없죠.

언제 내 안에 있던 죄가 또 내 인생을 무너뜨릴지 그러니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잖아요.

하나님이시어 내가 죄 덩어리입니다. 내 안의 죄를 제하여 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창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내 자신을 믿으면 우리는 넘어집니다. 그게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며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비하, 자기를 비움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누리는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베드로가 영적으로 교만하여 예수님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을까요?

베드로의 실패는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죠.

베드로가 했던 그 모든 일은 사탄이 한 일이죠. 마태복음 16장 23절 말씀입니다.

시작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십자가의 사건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합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막아섭니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주님은 알고 있는 거예요. 지금 베드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왜 이렇게 하는지 베드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 베드로의 마음을 조정하고 있는 사탄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이 말씀 속에요.

사탄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게 됩니다. 사탄의 정체가 뭐예요?

그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사탄은 정오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예수님을 사랑했던 베드로를 공격한 거죠.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를 움직였던 거죠.


사탄이 베드로를 움직여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방해한 것.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설득하게 했습니다. 주님 절대로 이 일이 주님에게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 그러지 마십시오. 예수님 앞에 막아선 거죠.

그건 베드로가 한 게 아니에요. 베드로 안에 사탄이 하는 거죠.

두 번째는요. 예수님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멀찍이서 따라갔다고 그랬습니다.

이건 상상할 수 없는 베드로의 모습 아닙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겠다고 했던 베드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막아섰던 베드로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베드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저기 앞에 끌려갔는데, 베드로는 저 멀찍이 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거리는 어떤 거리입니까?

자기가 손해 보지 않고 자기는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가는 거죠.

적극적이었던 베드로가 소극적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세 번째 사탄이 베드로에게 한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 말씀 같이 한번 고백합니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들에게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간 이유는요. 베드로를 예수님을 보호하고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분은 죄가 없다.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변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들 앞에 했던 말씀,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그는 믿을 수가 없던 거죠.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거죠. 의심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예수님의 결말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말씀하셨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의심하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는 짓인 거죠.


사탄의 특기는 참소하는 자라고 그럽니다. 이간질하고 거짓말하고 그래서 거리를 멀게 하고 싸우게 하고 헤어지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인 거죠.

결국 베드로는 이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던 거죠.

베드로가 그렇게 사탄 때문에 실패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다시 성경에서 찾는다면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베드로가 초대 교회를 지도하고 있을 때 흩어져 있는 나그네와 같은 성도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겁니다.

그것이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인데,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9절까지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들어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런 편지를 썼을까요?

자신이 실패했던,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그의 아픈 과거 그것을 생각하면서 너희도 조심하라.

왜냐하면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너희를 삼키기 위하여 너희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겸손하라 근신하라 깨어라 그 사탄을 대적하라.

왜 이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시죠.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당했던 그런 일,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그런 아픈 전처를 너희만은 밟지 말아라.

너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너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너희가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너희가 그 사탄을 대적하지 않으면 낙골댄다.

나처럼 실패한다. 통곡한다. 피눈물 흘린다. 그러니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도 안전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운전할 때 사고 나지 않기 위해서 늘 핸들을 잡을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게 뭡니까?

앞 차와 내가 얼마나 안전한 거리인가 안전 거리를 유지하지 않습니까?

안전거리를 유지하라고 브레이크를 만들어 둔 거죠.

그런데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을 때 결국은 사고가 나고 사고 난 후에야 후회한들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난 다음에야 눈물 흘리면 못 하겠습니까?

영적인 사고가 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그 영적인 안전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는 하나님이 데려가고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고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시고 이 백성들은 내가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가나안까지 데려갈 거다.

그러니 너는 담대하게 이 백성들을 이끌어가라.


그리고는 이제 요단을 건너도록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신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언약교회를 맨 제사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너희도 주저하지 말고 따라가되 그 언약궤와 너희 사이의 거리가 2천 규비쯤 되게 하라.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이런 게 있어요. 하나님의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안전거리는 언약교회와의 이천 거리 2천 규빗입니다.

왜 2천 규빗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성경 그대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의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너희가 성공하고 너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안전 거리라는 하나님의 뜻인 거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죠.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안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와 얼마나 가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거리가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과의 여러분의 거리는 얼마이십니까? 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의심이 생깁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결국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그 주님을 나는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반하는 실패자의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안전 거리, 우리 주님과의 안전 거리, 십자가와의 안전 거리를 꼭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사는 것이 복잡하십니까? 안전 거리가 유지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고 십자가 가까이 더 나아감으로 여러분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건강한 신앙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적 안전 거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여 주셔서 베드로의 실패가 나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과의 거리, 우리 주님과의 거리, 십자가와의 영적 거리를 더 가까이 다가가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랑하는 대형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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