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9-주일축제예배] 유익한 고민(요한복음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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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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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예수와 니고데모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1)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2)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3)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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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믿음의 성장과 영적 성숙의 중요성
-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와 우리의 영적 성장 필요성
- 바리새인과 니고데모의 차이점과 그들의 영적 갈등
- 복음을 듣고 변화된 니고데모의 이야기
다음 할 일
-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
-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요약
제자 훈련을 통한 변화
- 제자 훈련을 통해서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주기를 바라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눔
- 제자 훈련을 통해서 변화되고 싶다는 고백을 들을 때 마음이 기뻤음
-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함
믿음이 자라는 이유
- 믿음이 자라야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고 기도할 제목이 아무것도 아님
- 믿음이 자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
-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할 이유는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주시기 때문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성장
- 믿음이 크면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있음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오직 눈에 보이는 것 고린도가 잘 사는 동네였잖아요. 그 뛰어난 무역 때문에 돈 벌고 편하게 살고 많이 누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 때문에 싸우는 거임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린도전서 3장 1절과 2절에 기록되어 있음
-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임
-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됨
신앙의 성장
- 어린아이의 신앙의 수준 가지고는 교회를 섬길 수가 없음
- 우리의 믿음이 어른의 믿음이 되어야 우리의 믿음이 어른처럼 성장해야만 우리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고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음
-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 되는 거임
영적으로 성장하는 방법
- 우리는 진짜 알아야 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에게는 용량의 한계가 있음
- 우리는 몰라도 될 것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채우고 살아감
-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진리 사실을 분별해내기 위해서 영적인 성장이 필요함
-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능력이 있고 영원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
바리새인의 기도
-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세리이고 한 사람은 바리새인임
- 바리새인은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임
- 니고데모는 사내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정치적인 권력, 막강한 재력,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유대인들을 가지고 있었음
니고데모와의 대화
-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능력 있는 설교를 인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라고는 알지 못하고 있음
-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따르지 못함
니고데모가 영적인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한 이유
- 니고데모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손에 쥐었지만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빈 공간이 있었음
- 니고데모는 사순절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어서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람
니고데모가 변화된 이유
- 니고데모가 변화된 것은 영적인 갈등 때문에 예수님 앞에 찾아왔던 것임
-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했던 말씀 복음 중에 복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장 16절을 듣고 놀라운 복음을 듣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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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부터 이제 제자 훈련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봄 학기에도 약 90여 분의 교우들이 또 제자 훈련에 등록을 하고 훈련 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이제 군사반과 사도반 제가 지도하는 그 반이 개강을 했습니다.
처음 개강을 하면서 신청하신 분들에게 제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번 제자 훈련을 하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참여하셨습니까?
이번 제자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주기를 바라십니까?
질문을 던졌어요. 그 질문을 가지고 이제 한 분씩 한 분씩 나눔을 하는데요.
그 대답이 이런 겁니다. 좀 더 하나님을 믿는데 똑바로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좀 자신 있게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고 성경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싶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녀들에게 아빠로서 엄마로서 예수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좀 시원하게 설명해 주고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기왕의 교회 다닐 것 그냥 이렇게 억지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뜨거움이 있어서 주일이 기다려지고 예배가 기다려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알고 있는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입이 열려서 예수 믿으라고 신앙생활하라고 우리 좋은 대형 교회 가자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겠다는 거예요.
또 어떤 분은 내가 교회 다닌다는 것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오픈을 시키지 못하겠대요.
내가 교회 다닌다고 그러면 그 사람이 자꾸 나한테 뭔가 물어볼까 봐 성경에 대해서 물어보면 예수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답할 자신이 없어서 제발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정말 제자 훈련을 통해서 거듭나고 싶습니다.
확실하게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 고백들을 들을 때 참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분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왔잖아요.
여러분 기도하실 때 이 제자 훈련을 받는 우리 성도 교우들이 정말로 예수의 제자로 확실하게 거듭날 수 그래서 그분들의 입이 열려서 어디든지 나가서 예수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제가 깜짝 놀랐어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이분이 심각하게 제가 죽고 싶습니다.
죽고 싶대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은 내 안에 있는 자아를 죽이고 싶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가 살고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 되어야 진짜 예수 믿는 사람 진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오랫동안 싸워도 아직도 죽이지 못했던 내 자신이 이번 제자 훈련을 통해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예 꼭 죽으십시오. 잘 죽으십시오.
맞죠? 여러분 내 자아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가 살아나잖아요.
내가 제대로 죽어야 말씀이 나를 통해서 세상 앞에 나타나잖아요.
이분들의 이야기는 한 가지예요. 변화되고 싶다는 거죠.
제자 훈련을 통해서 내가 정말로 변화되고 싶고 제자 훈련을 통해서 내 신앙이 성장하고 싶다 이런 기대와 이런 바람이었던 거죠.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모두가 다 그렇게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기도 제목을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 내 믿음이 자라서 이제는 내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내 문제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과 교회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근사한 기도죠.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기도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응답되면 여러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고민할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니까 기쁘고 감사하므로 나는 예수 전도하고 교회를 섬기는 거에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왜 여러분들이 봉사 못합니까? 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기도할 제목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만큼 곤고한 거예요.
그만큼 내 믿음이 없으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고민거리고 걱정거리예요.
믿음이 자라면요.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 메모하고 있는 매 년 동안 변함없이 적어내는 기도의 제목이 아무것도 아니어요.
그거는 문제도 아니고 기도 제목도 아니에요. 아직도 내 믿음이 어리니까 내 힘으로는 모든 것들이 벅찰 뿐인 거죠.
여러분 모두가 그런 기대가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에는 변화되어야지 금년에는 진짜로 내가 좀 거듭나야지 금년에는 내가 예수님 똑바로 믿어야지 금년에는 내가 하나님 제대로 믿어야지 금년에는 내가 교회 봉사 똑바로 해야 되겠다 그런 고백 그런 기도 제목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변화되고 믿음이 자라고 내 신앙이 자라야 내 삶이 달라지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고 있는 기대가 있어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셔요.
내 신앙이 성장하기를 원하셔요.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왜 우리 영적인 성장이 필요할까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방법이 없어요.
오직 한 가지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돼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우리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 한 해는 이런 믿음이 훨씬 자라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어야 믿음이 자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죠.
또 한 가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할 이유는요.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우리의 믿음의 수준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대해주시는 거예요.
내 믿음이 크면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있어요.
내 믿음이 작으면 그냥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도 얻을 수 있는 그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은 굉장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이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거 보았고 보통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크고 깊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르쳐주는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정말 수준 높은 은혜와 비밀을 전해주고 싶은데 이 성도들의 영적인 수준이 자라지 않는 거예요.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오직 눈에 보이는 것 고린도가 굉장히 잘 사는 동네였잖아요.
그 뛰어난 무역 때문에 돈 벌고 편하게 살고 많이 누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그런 고린도 교회 성도들, 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린도전서 3장 1절과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백합니다. 시작.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 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울이 하는 거예요. 여러분 느껴지십니까?
가르쳐 주고 싶고 설명하고 싶고 전해 주고 싶은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신비로운 은혜와 복음의 세상이 있는데 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까 여러분 우리가 믿음이 자라면요.
내 신앙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 수준에 맞추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수준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서 우리는 어른의 수준으로 성장해야 될 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요. 하나님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어요.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세상의 즐거움 속에 살아가던 지옥을 향해 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탁 집어서 교회로 불러주셨어요.
하나님이 불러주시지 않으면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예배의 자리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신 거예요.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겠죠 나를 부르신 것은 나 하나 예수 믿고 구원받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요.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내가 변화되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내 믿음이 성장해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족과 이웃과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교회로 인도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이 부르심의 이유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내가 아는 사람, 차 한잔했던 사람, 얼굴 튼 사람을 그냥 안 보내요.
그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내가 만난 저 사람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
전도하게 해 주십시오. 내 입술을 열어 그에게 다가가서 복음 전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이 성전으로 인도하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그거지요.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같이 고백합니다. 시작.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형 교회에 보낸 이유는 우리가 신앙 훈련을 통해서 제자 훈련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목장 모임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거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내일 믿음이 변화되어야 되죠.
영적으로 성장해야 되죠. 우리 영적으로 성장해야 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거죠.
에베소서 4장 14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성장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이유는요.
어린 아이를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 안에는요 그냥 다 어른이 앉아 있지만 신앙은 우리의 믿음의 수준은 어린 아이 위에 머물러 있는 그런 분도 많아요.
어린아이의 특징이 뭘까요? 어린아이는 자기중심적이죠.
고집불통이죠.
어른 아이가 부모님을 배려하고 형, 누나를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거 보았습니까?
어린아이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고집이 셉니까?
어린아이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면 그게 다예요. 그것보다 더 좋은 거 준다 해도 아니에요.
지금 내 앞에 있는 거, 내 손에 있는 거 잡는 거 그게 최고로 알아요.
어린아이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울고 기분 나쁘면 소리 치고 바닥에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 부모 욕하는 거 몰라요.
신경 쓸 것도 아니에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린아이의 신앙의 수준 가지고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요?
전부 욕하고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고 어린아이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하잖아요.
다 틀린 거예요. 어린아이의 신앙의 수준 가지고는 교회를 섬길 수가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이 너무너무 다양해요. 어른들은 어떻게 압니까?
인내할 줄 알죠. 양보할 줄 알죠. 그래도 어른은 나와 다른 사람도 포용할 수 있잖아요.
우리의 믿음이 어린 아이로서는 교회를 섬길 수 없고 우리의 믿음이 어른의 믿음이 되어야 우리의 믿음이 어른처럼 성장해야만 우리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고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죠.
그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죠. 그를 섬길 수 있죠.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 되는 거죠.
또 하나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서 우리는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신앙이 성장해야 오직 십자가의 도밖에 없다는 것, 십자가의 능력밖에 없다는 것, 이 세상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그 십자가 바라보면서 달려가게 되는 거죠.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그러잖아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뉴스들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래요. 우리가 몰라야 될 것을 너무 많이 알아요.
진짜 알아야 될 것을 알 수 있는 우리 사람에게는 용량의 한계가 있잖아요.
그죠? 진짜 알아야 할 것도 다 못 놓고 사는데 우리는 몰라도 될 것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채우고 살아가요.
그러니 혼란하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수많은 정보 속에는요.
가짜 뉴스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진리 사실을 분별해내기 위해서 우리 영적인 성장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믿음이 성장한 사람들은 세상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흔들리지 않아요.
다만 기도할 뿐이죠. 여러분 거리에 나가서 소리 지른다고 다 할까요?
조용하게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틀린 사람일까요?
오히려 더 진실한 사람입니다.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하나님 앞에 하잖아요. 여러분 소리 친다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권력자를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부탁하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 사람을 모으고 사람들 앞에 도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간절하게 이 성전에서 기도하잖아요.
누가 그럴 수 있습니까?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 믿음 믿는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는 거죠.
왜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능력이 있고 영원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요 사순절 기간 동안 십자가를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1만 번 성전 릴레이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니고다모라고 하는 한 사람 그의 변화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의 가치를 과감하게 내려놓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신앙생활했던 니고데모의 이야기입니다.
니고데모가 처음부터 그렇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신앙이 어떤 건가를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는데요.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여러분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이 한 절 안에서 다 찾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라 그럽니다. 여러분 바리새인 많이 들어봤죠?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의 이야기 참 많이 나오잖아요.
그 바리새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가를 우리가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누가복음 18장 11절과 12절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같이 한번 고백해 볼까요? 시작.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가늠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1회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보십시오.
바리새인 예수님 앞에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 바리새인이고 한 사람은 세리예요.
세리는 성전에 와서 감히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오직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가슴을 치고 있어요. 그런데 바리새인은 어떻게 한다고요?
한가운데 성전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하나님 나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나는 누구와도 다르고 저 세리와도 다릅니다. 뭐라고 그럽니까?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래요?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나는 소득의 11조를 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거죠.
여러분 바리새파 바리새라고 하는 것은 구별되라는 뜻입니다.
좋은 의미였어요. 처음 바리세파는 정말로 율법을 준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시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엄격한 율법 준수가 틀에 박혀버리게 된 거죠.
형식화된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때 뭐라고 그럽니까?
외식하는 자들아 내용은 없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있는 척 척척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리새인입니다.
믿음도 없으면서 믿음 있는 척 구제하되 자기 얼굴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또 하나요 유대인의 지도자다.
니고데모를 두고 유대인의 지도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니고데모는 사내 드린 공의회 회원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가장 골수 산에 들인 공이회 회원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사내들인 공의회는 유대교의 최고의 의결 기구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종교적인 문제, 법적인 갈등, 정치적인 모든 문제에 결정을 사내 드린 공의회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에 들인 공의회 회원이 되면 정치적인 권력, 경제적인 부,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한 손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들린 공의회 회원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증거가 요한복음 19장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서 무덤에 넣는 자신의 무덤에 넣었던 사람이 나오죠 여러분 누구예요?
요셉이죠 아리마데 사람 요셉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것은 어디에서 결정했을까요?
산에 드린 공의회에서 결정한 겁니다. 그런데 그 아리마데 사람 요셉도 산에 드린 공의의 회원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죠. 유대인들의 대표예요.
그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었던 아리마데 사람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저 예수의 시체를 나에게 주십시오.
내가 내 무덤에다가 장사하겠습니다. 빌라도는 다른 사람이 요청했다면 절대로 허락하면 안 되죠.
사내드린 공위에서 결정해서 예수를 죽였는데요.
그런데 아리마데 사람 요셉의 요청은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이유가 뭘까요? 정치적인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거죠.
그의 도움이 필요한 거니까 거래를 한 거죠. 이것이 바로 사내 드린 공의의 회원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킴 파워입니다.
또 하나 니고데모 역시 사내드린 공의의 회원이었잖아요.
예수님의 죽음 앞에 아리마데 사람 요셉과 함께 그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하기 전에 세마포에 싸잖아요.
그전에 향료를 발랐습니다. 시체가 부패되지 않도록 향료를 바르는데 니고데모가 그 향료 100리트라를 가지고 온 거예요.
여러분 100리터라라고 하는 그 당시로 환산해 보면 어떤 주석학자의 이야기를 빌려보면요.
보통 노동자의 150년 치의 연봉에 해당된다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럼 니고데모가 그 엄청난 액수의 향료를 예수님의 시체에 발랐다라고 하는 것은 뭘 증거합니까?
그가 그만큼 부자였다는 거죠. 어디에서 그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요?
산에 들인 공이의 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니고데모가 산에 들인 공이의 회원이었고 바리새인이었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신앙,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거죠.
또 한 가지는 뭡니까?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손에 쥐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권력, 막강한 재력,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유대인들, 모두가 우러러 보는 명예를 다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건 뭘까요? 그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완벽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신앙생활은 어떻게 했을까?
니고데모의 신앙은 어떠했을까? 오늘 말씀 속에서 니고데모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라비요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하지 못합니다.
라비어 선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있는 설교 그걸 인정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라고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표적과 기적은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기적을 주시는 선지자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아직도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는 말씀을 전했을 때, 니고데모의 반응은 어떻게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다시 나올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거죠.
예수님은 존경은 했지만 이런 니고데모의 신앙을 우리는 한마디로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한 겁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신앙 그랬기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 내가 예수 제자다. 내가 예수를 좋아한다.
내가 예수의 말씀에 은혜 받는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숨어서 따르고 있습니다. 재밌는 게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만 니고데모의 이름이 세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요. 세 번 중에 두 번은요. 니고데모를 어떻게 소개하느냐?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사람. 니고데모의 별명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왜 그가 밤에 왔을까요? 당당하게 예수를 따르지 못하는 거죠.
사람 눈치 보면서 산에 들인 공 위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밤중에 찾아온 거예요.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또 한 가지 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손에 쥐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빈 공간이 있었다는 거죠.
잠 잘 수가 없어 그 밤에 예수님께 왔던 거예요. 여러분 니고데모의 이런 모습 어린아이의 신앙을 보면서 여러분 중에는 니고데모처럼 내가 예수 믿는다고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직장이 아직도 10년 넘게 다녔는데도 아직도 내가 교회 다닌 것이 들킬까 봐 하나님 오늘도 안전하게 들리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출근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식사할 때마다 고민하는 분, 기도하고 먹을까 그냥 먹을까 그런 분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니고데모의 신앙의 자리에 있는 그런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 회개하셔야 돼.
정말 이번만은 이번 사순절만은 내가 당당하게 나 이런 사람이에요.
나 대형 교회 다니고 있어요. 나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나 그리스도인이에요. 자신을 드러내어서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만약에 니고데모가 변화되지 않았다면 성경에 니고데모의 이름을 기록할 이유가 없었겠죠.
그냥 지금처럼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살았다면 성경에는 니고데모의 기사가 세 번씩이나 적혀 있을 이유가 없죠.
여러분 니고데모가 바뀌었어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산에 들인 공유에서 예수를 잡으려고 합니다.
유대 사회에 예수님 때문에 수많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니까 사람들이 그 말씀만 들으면 막 은혜 받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가만히 볼 수가 없잖아요.
사에드린 공유에서 예수를 잡기로 체포하기로 결정을 하고 아랫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가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아멘 아멘 하고 너무 좋아하니까 감히 예수를 잡아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자신들이 예수를 잡아오면 거기 무리들에게 맞아 죽을 것 같으니까 빈손으로 왔습니다.
공의회 회원들이 묻습니다. 왜 빈손으로 왔느냐 왜 아직도 예수를 잡아오지 못하느냐 우리가 잡으러 갔는데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이 전부 예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니 우리가 데려올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그럽니까? 너희도 그 자에게 미역되었느냐 너희도 예수 믿는 제자가 되었느냐 욕을 하는 거예요.
살벌한 자리죠. 그 살벌한 자리에 니고데모가 당당하게 예수 편을 듭니다.
예수 편을 듭니다. 만약에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발각되어지며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발각되어지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빼앗기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숨기지 않습니다.
예수 편을 듭니다. 그러니까 다른 공예의 회원이 뭐라고 그럽니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너도 예수 편이냐 이렇게 피한양하잖아요.
변화된 거예요. 니고데모가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예수님 마지막 십자가에 달렸고 돌아가실 때 장사할 때 여러분 향료 10 리트라 어쩌면 그의 전재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것을 빼앗기지 않아 밤에 예수님을 찾을 만큼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살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가 나서서 세마포를 입혀 향유를 불러 예수님을 무덤에 넣었습니다.
이만큼 니고데모는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칼빈은요 이 니고데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의 모범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렸을 뿐만 아니라 담대하게 무덤으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믿음, 성숙한 믿음을 증명해 보였다.
눈치 보며 살던 니고데모가 이제는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나는 예수 제자라고 얼마나 멋집니까? 얼마나 부럽습니까?
여러분 중요한 건 이거죠. 그럼 어떻게 니고데모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니고데모의 아내 자기 영혼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가졌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그 영적인 갈증, 그 고민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중에라도 예수님께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주님 앞에 찾아왔던 니고데모 예수님은 그에게 기가 막힌 말씀을 하죠.
영적인 갈등 때문에 예수님 앞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놀라운 복음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니가 오데모에게 했던 말씀 복음 중에 복음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한 사람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원포인트 레슨이죠.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말씀을 그가 듣게 되었습니까?
영적인 갈등 니고데모가 예수님 앞에 간 것은 세상에 더 가지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더 높아지기 위해서,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채워줄 수 없는 영적인 고민 그것 가지고 주님 앞에 갔던 거죠.
결국은 유익한 고민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었고 구원받게 되었고 예수 제자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대형 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것 좀 더 편하게 좀 더 높이 더 많은 걸 가지려고 하시는 세상을 향한 걱정 염려가 있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파괴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정 니고데모처럼 유익한 고민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수 제대로 믿고 내 신앙이 성장하고 내 믿음 생활이 변화되어서 이제는 교회 가는 것이 즐겁고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유익한 고민을 품어서 말씀을 묵상하고 1만 번 성전 릴레이 기도 하루 중에 한 시간은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함으로 여러분의 연약했던 신앙이 온전한 신앙으로 변화되어 오늘 이후 변화된 이후에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당당한 예수 제자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그 기쁨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니고데모의 이 혀나 영적인 성장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사순절 기간 하나님 세상의 걱정, 염려, 근심 다 내려놓게 하시고, 온전하게 아직도 예수님을 온전하게 만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내 믿음 때문에 고민하고 기도하게 하시고, 이번 사순절 기간 1만 번 성전 릴레이 기도를 통하여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는 누구 앞에도 당당하게 내가 예수의 제자임을, 내가 대형 교회 성도임을 드러내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안내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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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9-주일축제예배] 유익한 고민요한복음 3-1-5.mp3 (50.0M)
2회 다운로드 | DATE : 2025-03-12 14: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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