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주일축제예배] 고넬료의 믿음(사도행전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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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4-주일축제예배] 고넬료의 믿음(사도행전 10-1-8)
사사로운 부탁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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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모세의 가정과 믿음의 중요성
- 고넬료의 믿음과 그의 삶의 태도
-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믿음의 가정의 역할
다음 할 일
- 믿음의 가정 세우기 계획 세우기
- 고넬료의 믿음을 본받기 위한 노력 시작
-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 점검
- 가정의 달을 위한 기도 계획 세우기
단락별 요약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방법
- 가정의 달이 돌아오면 우리 가정을 위해서 많이 기도함
-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가정이 있었기 때문임
- 믿음의 가정을 온전히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준비한 모든 은혜와 복이 우리 안에서 단절됨
모세의 가정을 통한 구원의 역사
-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
- 모세의 가정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함
모세의 탄생
- 모세가 태어났을 때 죽을 운명이었음
-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보고 잘생겼다고 함
-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보고 잘생겼다고 한 것은 히브리어 토브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임
모세의 어머니
- 모세는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무엇인가 하시려고 하는 뜻이 있어서 내게 아들로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세를 지켰음
-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라고 믿음의 영양을 줌
-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딸로 편안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할 것인가 선택해야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로 결단함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
-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을 때 이스라엘에는 영적인 지도자가 없었음
-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이 사무엘 선지자임
-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사사임
-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도 점검해야 됨
한나의 믿음
- 한나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사무엘을 맡김
- 사무엘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겼더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심
- 고넬료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모든 것들이 회복될 수 있었음
고넬료의 경건한 믿음
- 고넬료는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온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노력함
- 고넬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이웃들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함
고넬료의 믿음
- 고넬료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고넬리오에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음
- 고넬료는 좋은 것을 나누어 주려고 애를 썼음
- 고넬료의 믿음 때문에 베드로가 이방인의 가정에 성령이 임재한 사건이 예루살렘 교회에 큰 충격을 줌
-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함
고넬료의 믿음
- 고넬료의 믿음이 베드로를 감동시켰고 베드로를 변화시킴
- 고넬료의 간증을 통해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변화되고 깨어져서 복음이 전 세계를 향해 펼쳐지게 됨
- 고넬료의 믿음은 하나님의 복음이 세계를 향해 펼쳐지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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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이 돌아왔습니다. 늘 가정이 소중하지만 특별히 우리 가정의 달 되면 우리 가정을 위해서 또 많이 기도하잖아요.
눈물 흘려 기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번 가정의 달 여러분의 가정이 건강한지 여러분의 가족들이 모두가 다 신앙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책임 있게 여러분의 가족이 한 믿음 안에서 서 갈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런 한 달.
그래서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주님의 풍성한 은혜로 사랑이 회복되고 그리고 은혜가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이라고 하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죠.
사람이 태어날 때 누구도 예외 없이 가정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고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모든 것들을 가정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을 최초의 사회라 그러고 가정을 최초의 학교라 그러고 부모님을 최초의 교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헌신해 주셨고 사랑해 주셨고 위로해 주셨고 격려해 주셨고 양육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겁니다.
여러분 신학적으로 가정을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가정도 있지만 여러분 예수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루어 가는 가정은 또 달라요.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축복, 하늘의 은혜를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도구 통로가 바로 믿음의 가정이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거죠. 우리가 믿음의 가정을 온전히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준비한 그 모든 은혜와 복이 우리 안에서 단절되는 거죠.
흘러가지 못하는 거죠. 여러분 이건 하나님 앞에 나중에 섰을 때 참 책망받을 일인 거죠.
은혜와 복을 나에게까지 우리의 가정까지 주셨다면 책임 있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 사랑을 우리의 가정이 또 다른 가정으로 흘려보내는 통로를 우리가 믿음의 가정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가정에서 부모들은요.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 은혜와 사랑을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고 보여줄 수 있는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장이기도 합니다.
그냥 성장한 사람 없잖아요. 그냥 세월이 지나 시간이 지나 여러분 이렇게 믿음의 자리에 있는 것 아닙니다.
믿음의 부모들이 아니면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를 키워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 안에서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전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정 안에서는 신앙이 형성되고 그리고 부모의 신앙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게 되는 겁니다.
가정이 이래서 소중한 겁니다. 여러분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 한 달 동안 여러분 가정을 믿음 위에 바르게 세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오는 새 가정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우리가 읽다가 보면 선명한 것이 발견되어지는데요.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오신 거예요. 그리고 지금부터도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런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모세의 가정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쓰셨던 축복의 도구요.
축복의 통로가 바로 모세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 가정에서 태어나는 남자 아이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는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산파들의 손에서 아니면 가족들의 손에서 죽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근데 그 모세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바로 왕 앞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40년 동안 지도자로 살았잖아요.
여러분 어떻게 모세가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믿음의 가정 믿음의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죠.
출애굽기 2장 1절에서 3절까지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됨에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치라고 아기를 거기에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모세는 히브리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이 모세를 보는 순간 모세의 어머니는 너무 잘생겼다는 거예요.
너무 잘생겨서 죽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 표현 이 말에 여러분 넘어가시면 안 돼요.
잘생겼기 때문에 살려주었을까요? 여러분 세상에 자기 아들 못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 딸 너무 잘생겨서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기 때문에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학원 보내고 돈 보냈습니까?
아니죠. 내 자녀니까 여러분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잘생겼다.
외형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잘생겼다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라고 하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이 토브라는 단어가 뭐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만드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하나님이 창조한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감탄하신 거죠.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토브가 바로 그런 뜻이라는 겁니다.
즉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보면서 잘생겼다.
이 말은 외형이 잘생긴 것이 아니라 이 아들은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통해서 무엇인가 하시려고 하는 뜻이 있어서 내게 아들로 주셨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 모세를 지켰다는 거죠.
죽여야 하는데 죽일 수가 없었던 거예요. 왜 하나님이 뭔가 이 아들을 통해서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인 거죠.
3개월은 숨겨서 키웠는데 울음소리가 커지니까 더 이상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죽이지 않았잖아요. 갈대 상자를 만들고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다 한 다음에 거기에 모세를 넣어서 뚜껑을 덮어서 강가에 띄웁니다.
버린 게 아닙니다. 그리고는 모세의 누나 미리암을 따라 보냅니다.
이 갈대 상자가 어떻게 되느냐? 그런데 마침 바로의 딸 공주가 거기에 나왔다가 이 갈대 상자를 보고 뚜껑을 열어보니 아이가 있습니다.
이 바로의 딸이 이 아이를 키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에 미리암이 가서 이 아이에게 좋은 유보가 있다 소개해도 될까요?
유모를 소개하는 거예요. 그가 누구예요? 모세의 모친이죠 모세의 어머니죠.
그 바로의 공주는 이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모세의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게 합니다.
좀 애매하지만 여러분 저절 뗀다. 몇 살 때 젖을 뗄까요?
한 5년이면 되나요? 저도 알아요. 정확하게 몇 년이 안 나와 있으니까 그 말은 그 어린 시절에 모세는 모세의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다는 거죠.
모세의 어머니가 믿음 있는 사람이었잖아요. 그 어머니가 모세에게 젖을 주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너가 조금만 이제 자라면 너는 바로 이 궁에 들어가야 된다.
그전에 모세의 어머니는 1분 1초가 아까웠겠죠.
어떻게 했을까요?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는 히브리인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에 하나님을 잊지 말아라고 얼마나 얼마나 아이에게 얘기했겠습니까?
놀랍죠. 모세가 이제 바로의 궁에 가서 당대 최고의 애굽의 학문을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모세의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모세가 결단을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바로의 공주의 딸로 편안하게 걱정 없이 군림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나에게 신겨주었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난 당하는 내 동족, 저렇게 인권을 무시당하고 노예로 살아가는 저 백성들을 위해 살 것인가 선택해야 될 때 모세가 선택한 것은 바로 공주의 딸로서의 삶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로 결단을 한 거죠.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의 영양이었던 겁니다. 신앙교육은요.
어릴수록 좋은 거예요. 저는 우리 교회에 보면 유아부와 유치부에서 지금 100여 명의 아이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그 아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자랐으면 좋겠어요.
우리 유아부 유치부 선생님들 얼마나 고생해요? 그들에게 계속해서 예수 사랑 가르쳐주고 성경 가르쳐주고 있잖아요.
여러분 그 아이들에게 세상에 것 배우기 전 예수님 하나님 그 믿음 심겨지면 세상에 그 어떤 학문도 그들 어린 시절에 새겨졌던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나중에 성장하면 우리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믿음의 지도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세 죽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신앙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거죠.
믿음의 가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또 하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가장 위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고 있던 중에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강하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생시켰잖아요.
정신 차리게 했잖아요. 그중에 하나가 블레셋 족속입니다.
이 블레셋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겹게 했습니까?
전쟁을 해서 빼앗아가고 사람을 죽이고 더 놀라운 일은 그 당시에 블레셋의 공격을 받을 때 이스라엘에는 영적인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엘리라고 하는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그에게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있었지만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나쁜 짓하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라고 하는 법계마저 블레셋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죠.
여러분 사무엘은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어머니는 한나잖아요. 아버지는 엘가나 신실한 제사장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한나의 아이가 없었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았으므로 아이가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한나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하나님 앞에 눈물로 살았고 아들 못 낳는다라고 하는 그 말 때문에 서러움을 받으면서 살았잖아요.
그런 그 한나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열어 임신하게 하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사무엘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의 사무엘이 한 일은 대단한 거죠.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사사입니다. 이제 사무엘 다음에 사무엘이 왕이 되고 다윗이 왕이 되잖아요.
왕이 없었던 시절에 사무엘은 세 가지 일을 다 합니다.
왕 노릇도 해야 되고 제사장 노릇도 해야 되고 선지자 노릇도 해야 됩니다.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도 사무엘이 다 점검해야 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은 자신의 손으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세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 광장에 다 모아놓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 온전한 번제를 드림으로 침묵하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그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도에 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에 했던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무엘은요 한 나의 기도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던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포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있다는 고백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한, 나의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한 나의 태를 열어 아들을 주신 거죠.
사무엘의 이름의 뜻은 뭡니까?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주신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고백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요. 한나에게 사무엘은 얼마나 소중했겠습니까?
그를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이제는 놀릴 수도 없고, 그동안 서러웠던 모든 것들이 다 한 방에 날아가는 거예요.
평생을 자기 옆에 두고 싶었던 아들이 사무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한나는 하나님 앞에 이 어린 아들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퇴를 열어 아들을 주셨으니, 이제 나도 이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아버지께 드린다.
여러분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오랫동안 서러워서 울며 울며 기도해서 주신 그 아들 그 아들을 어린 나이에 여호와의 성전에 들였습니다.
엘리 밑에서 신앙 훈련을 받게 했잖아요. 저는 한나가 대단한 게 엘리러에게 맡긴 게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 거죠.
엘리의 소문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타락이 있고 제사장으로서의 모범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도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긴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사무엘을 어떻게 했을까요?
사무엘 상 2장 26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람에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사무엘 상 3장 19절 20절에 사무엘이 자라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겼더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거예요.
여러분 사무엘을 한나가 키웠습니까? 하나님이 키웠습니까?
만약에 한나를 한 나의 품에 그 사무엘을 엄마인 한나가 자기의 품에 안고 키웠다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무엘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없었죠. 여러분 이 사실이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자녀들이 있죠.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자녀들 너무너무 귀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이 껴안고 있으려고 그러잖아요.
품에 안고 있으려고 그러잖아요. 다칠까 실패할까 그냥 안고 있잖아요.
과연 그것이 여러분의 아들 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요?
여러분의 능력 가지고 여러분의 생각 가지고 키우면 그 자녀들은 여러분 이상 능가할 수가 없어요.
우린 다 아이러니하게 살아요.
우리 자식들이 나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아이들을 내가 경험했던 선 안에서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만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아이가 내 부모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한낮처럼 귀하고 귀한 아들 딸들이라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정말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여러분의 아들 딸들 더 건강하고 더 지혜롭고 더 멋지게 키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이 있어서 위기의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 앞에 서고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모든 것들이 회복될 수 있었던 거죠.
그 사무엘이 가능한 것은 엘가나와 한나라고 하는 믿음의 부모 믿음의 가정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고넬료의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가이샤라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장교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있잖아요. 로마의 황제는 그 이스라엘 유대 땅에 총독을 파송합니다.
그것이 가이샤랴 빌립보라고 하는 지역입니다. 거기에 총독이 있으면서 유대 땅을 그들이 나쁜 짓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세금을 바로 걷도록 총독을 파송했습니다.
고넬료는 그 가이샤라에 머물고 있던 총독을 경호하는 수비대의 장교죠.
100명의 부대를 지키는 장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이 고넬리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유진 피터슨이라고 하는 영성학자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시작 그는 자기 집안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살도록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기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와닿지 않습니까?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다. 여러분 경건은 결국 추상적인 게 아니에요.
우리가 경건하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기도 많이 하고 예배 잘 드리고 우리는 자꾸만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 경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경건이 삶의 자리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고넬료의 믿음이 어떻게 표현됩니까? 첫 번째는요.
온 가족들을 하나님 예배의 자리에 바로 세우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린 보통 믿음 좋다 그러면 혼자만 새벽 기도 열심히 하고 하루에 한 번씩 성전에 와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이걸 우리는 믿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나만 잘 믿으면 되겠지 내가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되겠지.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고넬리는 자기가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믿음의 사람인데 내 자식들이 내 가족이 내 배우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건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발버둥을 친 거죠.
노력을 한 거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이웃들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고넬료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가이샤랴 유대 땅입니다. 그 땅에 물론 로마의 군인들도 와 있지만 그 숫자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훨씬 더 많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보다 가이샤라가 더 무역의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넬료가 그 사람들에게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었다라고 하는 말은 로마 사람들에게만 베푼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선을 베풀었다는 겁니다.
이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지금 고넬료의 신부는 지배 국 로마에서 파송한 지휘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고넬료의 명령 말 한마디에 따라서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죠.
자기보다 신분도 낫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고넬료의 믿음이었던 거죠.
왜 그가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고넬리오에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들을 그가 미워할 수 없었던 거죠.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할 때 고넬리오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교회 밖에 예수 믿지 않은 그들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실 거예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냈잖아요.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내 기분에 따라서 내 감정에 따라서 나하고 좋은 사람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거죠.
여러분 고넬료의 믿음 또 하나는요. 그는 좋은 것을 나누어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 지배자인 고넬료가 그 베드로를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의 명령이니까 고넬류는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보냈다고 그럽니까? 자기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 이게 참 중요한 말이에요.
고넬리는 혼자만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그리고 자신 밑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그들이 다 경건한 사람 고넬리오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베드로가 오기 전에 고넬료는 자기 친척들, 친구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왜 불렀을까요? 고넬료의 소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주실 터인데, 그 베드로가 빈손으로 오지 않고 하나님이 좋은 것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고넬료는 자기의 신화를 베드로에게 보낸 다음 친척들, 친구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 앞에 다 모아두었습니다.
베드로는 가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왜 가야 합니까?
그는 이방인인데 그들은 더러운 사람들인데 나는 지금까지 거룩하게 살았는데 제가 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이 세 번이나 명령해서 베드로가 그 집에 왔을 때 고넬료가 땅에 무릎을 꿇어 절을 하며 잘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으니 하실 말씀을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나님이 당신을 여기 보낼 때 계획했던 좋은 것, 어떤 일이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이 말이 베드로를 감동시킨 거예요.
베드로가 마음의 문이 열려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방인의 집에 성령이 임한 것은 베드로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들에게만 성령이 임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들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이방인의 가정에 성령이 내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거죠.
베드로는 그 식구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고넬료의 믿음 때문에 그 이방인의 가정에 성령이 임재한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변했습니다. 그도 유대인이었잖아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자기들끼리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살았던 폐쇄적이었던 베드로가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그가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으고 간증을 합니다.
우리가 틀렸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내려주셔서 우리와 같이 구원해 주셨다.
이제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고 이젠 우리가 이방인들을 형제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여러분 베드로의 이 외침과 주장 때문에 정말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 지역이었던 안디옥에다가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 거죠.
그 이방인의 선교를 통해서 마게도냐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대한민국 조선 땅까지 복음이 증거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고넬료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자기만 믿고 살려고 한 게 아니라 복음,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들에게 가족들에게 다 나누려고 했던 고넬료의 믿음이 베드로를 감동시켰고 베드로를 변화시켰고, 그의 간증을 통해서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변화되고 깨어져서 결국은 복음이 전 세계를 향해 펼쳐지게 된 거죠.
고넬료의 믿음은 하나님의 복음이 세계를 향해 펼쳐지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요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일해 오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우리의 가정이 그런 믿음의 가정 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모세의 가정처럼 사무엘의 가정처럼, 고넬료의 가정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가 믿음으로 세워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오늘도 이루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통해 우리의 이웃들, 우리의 친척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고넬료의 믿음 나만 서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친척들과 이웃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려고 애썼던 고넬료의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남은 삶이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믿음의 가정을 찾고 계심을 저희들이 깨닫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셔서 우리 온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기도로 세워지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을 통해 우리의 옆집이 우리의 이웃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대흥교회를 통하여 울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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