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9-주일축제예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로마서 12-1-3)
페이지 정보

본문
주요 주제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중요성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의 중요성
- 변화와 회복의 중요성
다음 할 일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기억
- 내 생각이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역사를 통한 변화에 집중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 모색
요약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
- 하나님께서 오늘이라고 하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음
- 오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준비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임
-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바라본다면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함
-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 앞에 나를 세워야 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유지하고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목적 하에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임
-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나를 만들어 주신 나를 만들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그 목적,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임
-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잘 사는 삶임
에녹의 삶
- 에녹은 타락하고 오염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음
- 월터 브루그만은 하나님과 에녹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다고 해석함
- 에녹의 삶은 하나님 앞에는 믿음이 되었고 하나님은 에녹의 믿음을 기쁘시게 받아주셨음
여호수아의 권면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준비한 땅에 들어가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를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변질되고 오염됨
-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변질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권면함
로마서 12장 1절 말씀
-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음
-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마치 여호수아가 죽기 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했던 권면의 말씀임
- 로마서 3장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된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임을 기억하기를 바람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바울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게 되었음
-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고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살아가고 있음
-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나를 내려놓고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의 산 재물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임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를 받아야 함
성령의 불이 임하는 은혜
- 변화는 내 생각이나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님
- 성령께서 내 속에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내가 그동안 깨뜨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깨뜨리고 성령이 나를 사로잡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변화에 성공하게 될 줄로 믿음
-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임할 때 오염된 우리의 감정이 회복될 것임
-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의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함
루터킹 목사의 적응 불능자
- 루터킹 목사님이 졸업생들에게 적응 불능자가 되라고 말했던 이유는 이 시대가 부패와 부조리로 모순이 가득한 시대임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임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그런 세상을 살아감
-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내야 함
-----------------------------------------
하나님께서 오늘이라고 하는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우리에게 선물인 것은 이 오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준비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또 한 달이 모여 1년이 되고 하루가 모여 결국 우리의 인생이 되는 거죠.
여러분 이 세상에서의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오늘을 잘 선용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여러분의 상급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바라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이냐를 알게 될 때 나는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인 거죠.
사람들의 불행이 어디서 옵니까? 자기 자신을 몰라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모방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내면서 살아가느라고 그의 삶에는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왜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합니까? 왜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가고 흉내냅니까?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정화하게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남들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려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 여러분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살아가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 26절 말씀 우리 함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참 소중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우연히 태어난 것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다른 모든 피조물은 말씀으로 하셨지만 사람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유지하고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목적 하에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 산다라고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하여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간 여러분 잘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손에 넣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것이 잘 산 걸까요? 아니라는 거예요. 잘 산다라고 하는 것은 나를 만들어 주신 나를 만들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그 목적,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삶을 사는 것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의 뜻을 받들어 섬길 때 거기에 안전이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잘 사는 삶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잘 살았던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았던 사람이 등장하죠.
에녹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5장 24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을까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이유에 대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살았던 시대는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살았습니다.
즉 타락한 세상, 오염된 세상 속에 에녹이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잖아요.
타락한 세상입니다.
죄로 오염된 세상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겹고 어렵습니까?
그런데 에녹은 그런 타락하고 오염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이라고 하는 성경학자는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하는 이 표현을 하나님과의 비밀을 공유했다라고 이렇게 해석해 줍니다.
하나님과 에녹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은 에녹의 얼굴을 대면하고 애녹에게 다 말씀했습니다.
에녹도 하나님 앞에 조금도 두려움 없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에녹은 이루어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에녹의 이 삶이 하나님 앞에는 믿음이 되었고, 하나님은 에녹의 믿음을 기쁘시게 받아주셨던 거죠.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에 보면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에녹의 삶은 타락한 세상에 살았지만, 이 세상의 것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시선을 맞추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녹을 기뻐하여 그를 죽지 않고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데려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형 가족 여러분,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에녹과 같은 삶인 줄로 믿습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죠.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 좋은 가나안 땅에서 고난당하는 어렵고 힘겨운 불행의 삶을 살아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인 거죠.
이사야 5장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덜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여러분 이 말씀 속에 포도원은 가나안 땅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자격 없는 이스라엘 백성,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어서 선택하셔서 그들을 안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어서 그 가나안 땅을 기경해서 좋은 포도나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에 옮겨 심으셨습니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믿음이 자라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인류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에 고스란히 안아서 옮겨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 열매를 맺지 않고 덜 포도 열매를 맺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던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한 것, 그 지도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은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여호수아 24장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나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땅에 들어가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수고를 하셨습니까?
그 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갈 집들, 성읍들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이 장차 열매 맺도록 포도원과 감나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변질되고 오염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이 변질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권면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그러므로 여러분 그러므로란 말은 뭡니까? 하나님이 너희를 이곳에 옮겨 놓았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수고했다.
그러니 너희가 섬기는 바를 버리고 온전함과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섬겨라.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여호수아의 간절한 권면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했던 사람들이었던 거죠.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란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거죠.
즉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존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을 위해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렸지 않습니까?
이사야 5장 5절에서 6절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을 이야기합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답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오.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을 위해 하나님이 내린 재앙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마음껏 그들을 짓밟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재앙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 아닙니까?
가나안 땅에 살지만, 그들이 가나안 땅은 결국은 바벨론에게 빼앗깁니다.
아수르에게 빼앗깁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아주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몰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삶은 불행이었던 거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내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이 뼈 아픈 눈물 나는 불행, 고난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대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도 바울이 개척하고 세웠던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마치 여호수아가 죽기 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했던 권면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죄와 허물로 소망 없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로마 교회 성도들이요. 여러분 자신을 위한 삶을 멈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권면할 수 있는 이유 근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자비가 있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가 있지 않으냐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
여러분 바울은 그 로마 교회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긴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1장에서 로마서 11장까지의 말씀입니다.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의 내용은요.
오늘 그리스도인 된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긴 내용을 다는 찾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말씀을 중심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무엇인지, 자비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기록된 바 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세상 탈락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그들 속에는 단 1%의 선한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로마 교회 성도들도 아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는 다 타락한 사람들, 우리 스스로에게는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 고백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타락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던 우리였는데, 대반전이 일어났죠.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보혈의 공로로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값없이 주신 그 은혜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젠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14절 시작.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은혜 아래 있게 된 거죠.
죄가 이젠 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2절 말씀입니다. 시작.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로 인하여 누구도 우리에게 죄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고,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 35절 말씀 시작.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신이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권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 말의 결론은 너희는 반드시 승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 여러분 로마 교회 성도들의 승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자비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죠.
이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하여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세상에 욕심내지 말고, 너희에게 베풀어주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거죠.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여러분의 아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던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가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살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자녀 삼기 위해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성냥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생각에 가득 차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함부로 살지 못하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을 모르는 예수, 사랑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따라가며 살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죄 지으며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자비를 여러분들께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를 내려놓고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의 산 재물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될까요?
오늘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 받는 겁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는 겁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노력하고 수고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변화시키지 못하잖아요.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중요한 것은 내가 변화되어야 되는 거죠.
내가 변화를 경험할 때 나는 능력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지 분별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우리가 가지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변화는 내 생각이나 내 의지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셨습니까?
그런데 됩니까? 안 되잖아요. 내 힘과 내 노력으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내 변화는 성령께서 내 속에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내가 그동안 깨뜨리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을 깨뜨리고 성령이 나를 사로잡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변화에 성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탄이 인류에게 죄를 넣었지 않습니까?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었을 때 그 아담과 하와 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막힘없이 대화하며 교제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집어넣었습니다.
그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던 인간의 감정을 오염시켰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웃게 해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반대로 가면서 악을 보면서 기뻐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거 보면서 속으로 시원해하는 타락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거죠.
여러분 우리의 타락하고 오염된 우리의 감정,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은 한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영인 성령 한 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임할 때 오염된 우리의 감정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럴 때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할 수 있고,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건강한 감정을 우리가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세기 세계적인 부흥사로 알려졌던 토저라고 하는 분이 성령의 불을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 성령의 불은 도덕적인 불이다. 거룩을 사모하고 건강한 도덕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영적인 분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라는 거죠.
성령은 지적인 불입니다. 은혜로 회복된 최고 수준의 지성적인 사고를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의지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인 겁니다.
마지막 성령은 감정의 불입니다. 죄로 오염되어 있는 우리의 감정을 순수하게 회복시켜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거죠.
사랑하는 대응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감정 오염되고 타락한 감정이 회복되어 여러분의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이드 존스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성령 박사입니다.
성경 안에 성령의 역사들을 정리하는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가 인류의 역사를 움직였던 사람들. 그들은 바로 성령의 불을 경험했던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성령을 경험했던 사람들, 그들은 영적인 세계를 실감하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하게 되고, 자신의 죄와 무능을 깨닫고, 구원으로 인해 넘치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의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소유를 드린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모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은 시대를 거역하며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마틴 루터 킹 목사님 유명한 분입니다. 그분이 어느 해인가 런던 대학교 졸업식의 축사로 참여하게 됩니다.
4년 동안 어렵고 힘들게 대학을 졸업하며 이제 직장을 얻고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그 많은 졸업생들 앞에서 이제 축사를 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했겠죠. 여러분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취업하게 되면 상사들에게 눈치껏 지혜롭게 점수 잘 따서 오랫동안 그 회사에서 머물러서 진급도 하고 승진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여러분 편하게 자녀들 잘 훈련시키고 가정을 일으키십시오.
아마 그렇게 축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루터 킹 목사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적응 불능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적응 불능자가 되십시오 하라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비판 없이 여러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위해서 살아가십시오.
루터킹 목사님이 그 졸업생들에게 적응 불능자가 되라고 말했던 이유는 루터킹 목사님이 이 시대에 부패와 부조리로 모순이 가득한 시대임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다스렸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그 졸업생들에게 여러분 그 세상에 순응한다면 여러분들도 결국은 타락하고 죄를 지어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 될 터이니 여러분은 이런 세상에 적응 불능자가 되시고, 여러분 혼자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했던 거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그런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의지로 안 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통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대응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큰 사랑, 하나님의 큰 자비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기쁨보다는 내 욕심을 위해, 이 세상의 것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사 변화받아 남은 인생, 오직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기쁨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