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3-주일축제예배] 그리스도의 분노(마태복음 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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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3-주일축제예배] 그리스도의 분노(마태복음 21-12-17)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막 11:15-19; 눅 19:45-48; 요 2:13-22)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ㄴ)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ㄷ)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ㄹ)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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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예수님의 분노와 그리스도의 분노의 차이점
- 성전의 목적과 기능 상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과 메시지의 의미
다음 할 일
-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의 배경과 의미 파악
- 예수님의 분노와 성전에 대한 책망의 메시지 분석
- 성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연구 진행
- 유대교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점 파악
단락별 요약
예수님의 분노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신 후 성전에서 분노하신 일과 길가에 있던 무화과 나무를 향해 저주하신 일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음
-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분노 속에 그리스도의 분노 속에 분명히 담겨져 있음
예수님의 분노
-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속에 있던 당시의 유대교와 유대교의 지도자였던 종교 지도자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의 표출이라고 말함
-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분노하신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것임
하나님의 성전
-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임
- 하나님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심
- 예수님의 눈에 보여진 성전은 특정인 사람들,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을 팔고 대제사장들로부터 허락을 받은 소수만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던 것임
예수님의 무화과 나무 저주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첫 번째 하셨던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기능을 잃었던 성전을 책망하셨던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가 확인할 것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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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하셨던 일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그동안 하지 않으셨던 전혀 예수님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을 두 가지 행동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성전에서 분노하신 일입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어쫓고 그리고 물건을 파는 그들의 상을 뒤엎으며 분노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길가에 있던 무화과 나무, 아무 열매가 없는 그 무화과 나무를 향해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두 번의 행동은 제자들에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했던 마테나 마가, 누가, 요한 이 4명의 제자들은 동일하게 자신들의 복음서에 이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분노하셨던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닐 때 주님은 한 번도 이렇게 화를 내신 적이 없었잖아요.
용서해 주고 죄인들도 다 품어주셨던, 사랑해 주셨던 긍휼을 베풀어 주셨던 죄인들조차도 안아주셨던 그 예수님이 이렇게 분노하시는 예수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예수님께서 그렇게 분노하셨던 이유는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분노 속에 그리스도의 분노 속에 분명히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허가 나무를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똑같은 내용을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에 보면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저 앞에 무화과 나무가 있는 것을 보셨다고 그럽니다.
멀리서 보니까 잎이 무성해서 예수님은 그 속에 뭔가 무화가 열매가 있는 줄 알고 그 나무 가까이 다가가셨는데 입만 무성할 뿐 거기에는 열매가 없었던 거죠.
기대하고 가까이 가셨는데 열매는 없고 입만 무성한 것을 아시고 실망하셔서 그 무화과 나무에게 이후로 너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기도 합니다.
여러 주석학자들의 그 주석을 보면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속에 있던 그 당시에 유대교와 그리고 유대교의 지도자였던 종교 지도자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의 표출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즉 그 당시의 유대교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변질되어 있습니다.
종교의 기능은 상실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구원의 일도 하지 못합니다.
제사는 변질되었고, 형식상의 제사 형식만 남아 있는 종교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 유대교 그리고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 그들이 마치 입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았기에 그 무화가를 보는 순간 예수님 속에는 그렇게 화가 치밀었던 거죠.
예수님께서 유대교와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책망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그들의 삶에 선한 열매가 없는 것.
그들을 향한 책망이었죠. 예수님의 눈에 비친 유대교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고, 형식적인 율법으로 가득 찬 제도적인 종교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책망했던 거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분노하신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겁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친 성전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말씀이죠.
다 같이요.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구를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인용한 겁니다.
이사야 56장 6절과 7절 말씀은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신 성전을 허락하신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고백할까요?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본죄와 희생을 나의 재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성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 성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는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여호와를 사랑하는 이방인들조차도 그 성전에서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그리고 하늘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이 땅의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전의 본질적인 모습은 문화와 인종, 정치를 뛰어넘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며 하늘의 기쁨과 그리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는 곳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보여진 성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성전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곳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눈에 비친 성전은 특정인 사람들,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을 팔고 그리고 대제사장들로부터 허락을 받은 소수만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던 거죠.
주님은 그 성전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예수님은 그 변질된 성전을 버리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본질을 잃어버린 기능을 잃어버린 그 성전을 주님은 돌아보지 않으셨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온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이제는 그동안 성전이 했던 그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하시겠다는 거죠.
주님은 이 땅에 변질된 성전을 패하시고 주님이 친히 교회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새롭게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의 기쁨과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롭게 만드신 교회 기능을 잃어버렸던 변질되었던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마태복음 16장에서 분명히 알게 되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너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너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지게 하겠다.
교회는 이 땅에서 모든 문제를 푸는 곳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첫 번째 하셨던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그리고 그 기능을 잃었던 성전을 책망하셨던 그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과연 건강한가? 오늘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런 교회일까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과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그런 예배일까요?
성전에서 이익을 위해 장사했던 타락한 그들과 같은 마음들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한 채 우리 안에는 시기와 증오와 질투와 미움이 있는 그런 마음으로 여기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상의 논리가 아닌 오직 우리 주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논리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고 품어주면서 우리 각자의 삶이 이 땅에서 저 천국을 열어주는 천국 열쇠의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대형 교회는 오직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우리가 한마음 한 뜻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내가 죽어져야 하고 내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하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우리 대흥교회 우리의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한 가지 회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17절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고백할까요?
시작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 안에 거룩한 성령이 계시는 성령의 전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어 우리 안에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성전이 되도록 우리가 늘 회개해야 되고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약한 생각이 있다면 몰아내어야 하고, 내 속에 더러운 생각들이 있다면 회개하면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열로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은 절대로 내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해 이 땅에 또 하나의 교회가 되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 천국으로 가는 친절한 이정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 교회인 우리 자신들이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솔직하게 우리의 모습들을 내어놓고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참여하는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추하고 더럽고 용서하지 못했던 그런 마음들이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지고 이제는 모두를 향해 웃을 수 있는 그런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거룩한 성만찬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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